지스몽다
지스몽다로 아르누보의 문을 연 알폰스 무하와 사라 베른하르트와의 우연한 만남과 무하의 아르누보 스타일의 기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1. 알폰스 무하의 지스몽다 포스터의 특징
인생에 보면 운명적인 만남이 있는데요 알폰스 무하와 사라 베른하르트의 우연한 만남이 그런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이후 성 스테파노의 날을 맞이해 정규직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무하가 급히 지스몽다의 포스터를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폰스 무하의 지스몽다 포스터는 아르누보 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에게 확고한 명성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무하는 1894년에 이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때부터 무하의 예술은 대전환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포스터는 당시 전통적인 그림에서 상당히 벗어나 아르누보 스타일의 몇몇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가로 폭이 좁고 세로 길이가 매우 길게 제작되어 여인의 키가 큰 모습을 더욱 여신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라는 거의 실물크기의 전신 초상화로 묘사되었으며 실제 지스몽다에 출연할 때 입은 왕관과 종려나무 가지로 완성된 비잔틴 양식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의상을 입은 여인을 담은 포스터의 배경은 아름다운 패턴으로 장식을 가득 채워 심미적 만족감을 더해줍니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으나 꽃과 나뭇잎 장식과 유기적인 패턴이 매우 조화롭게 어울리며 비잔틴 양식의 옷을 입고 있다면 반면 포스터의 색감은 로코코 양식의 파스텔톤을 사용해 전체적으로 튀지 않고 부드러우며 민트 배경에 전체적으로 골드색으로 통일했습니다. 텍스트 역시 장식체인 디자인적 요소의 폰트를 사용해 포스터 전반의 새련미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옷은 사라 베른하르트가 연극에서 실제 입은 옷을 그렸기 때문에 일부러 연출을 한 의도는 없었으나 이로써 우연하게도 비잔틴과 로코코 두 세대의 예술이 융합된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무하가 지스몽다 포스터를 제작하게 돤 계기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로는 당시 비교적 무명화가였던 무하는 인쇄 회사인 르메르시에의 전속 미술가가 없어서 우연히 포스터를 제작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주인공인 사라는 당시 가장 사랑받고 유명한 프랑스 연극배우였으며 무하는 그녀의 지스몽다 포스터가 성공하자 그녀와 6년 계약을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스몽다 포스터의 성공으로 명성을 얻게 된 무하는 사라의 포스터 및 의상 무대 디자인 등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지스몽다 포스터는 회화와 디자인의 융합이 매우 부드럽고 정교하게 제작되어 예술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2. 알폰스 무하의 다른 포스터들에 나타난 특징들과 연극 지스몽다
무하의 다른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사라 베른하르트 연극 포스터들에는 역시 아르누보 스타일의 장식적 요소가 들어가 있습니다. 광고 디자인과도 같은 포스터 형식의 그림인데 주인공 여성의 아름다운 모습과 매우 화려하게 장식된 꽃과 드레스를 섬세하게 표현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페이드 아웃 시킴으로 주인공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알폰스 무하가 1903년에 그린 사라 베르나르트의 포스터에는 주인공의 눈동자와 얼굴 표정을 마치 연극 무대에 출현한 듯한 생생함을 전달하고자 세밀하게 그렸으며 전체적인 장식 요소를 다소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포스터에 글씨와 문양을 장식적으로 사용했으며 디자인적인 요소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디자인적 요소들이 그의 포스터를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게 합니다. 사라 베른하르트가 출연했던 연극 지스몽다는 19세기 프랑스의 빅토리앙 사르두 작가의 연극이며 중세시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스몽다 "사랑, 권력, 음모"라는 주제의 멜로드라마로 1894년 10월 31일 파리의 르네상스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사라를 당대 최고의 배우로 만들어주었으며 그녀에 의해 생생하게 구현되었습니다. 지스몽다는 고결하고 의지가 확고한 과부로 지극히 보호해야 하는 아들을 두고 있으며 지스몽다의 사랑의 대상인 젊은 알메리오가 등장하고 이에 맞서 포스터에도 나타나듯 음모를 꾸미는 수도사가 등장합니다.
3. 알폰스 무하의 화가로서의 업적과 민족애
알폰스 무하는 아르누보 시대에 파리에 살았던 체코의 화가로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 아티스트로서 알려졌습니다. 특히 사라 베른하르트의 독특한 양식화되고 장식적인 연극 포스터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삽화, 광고, 장식 패널, 디자인을 제작했으며 이 포스터는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이미지 중 하나였습니다. 무하의 경력 중 두번째 공신력을 갖게 되는 것은 43세 때 고향인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모라비아 지역으로 돌아와 슬라브 만족의 역사를 묘사하는 슬라브 서사시(The Slave Epic)로 알려진 20점의 기념비적인 캔버스 시리즈를 그리는 데 전념했습니다. 1912년부터 1926년에 그가 그린 세계의 민족들을 192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 10주년을 맞아 그는 체코 국민에게 이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들은 현재 프라하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알폰스 무하의 그림이 오늘날 사랑받는 이유는 오늘날 현대인의 융합적인 감성과 맞아 그의 작품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회화적 요소와 디자인적 요소를 융합하고 그 기법에 있어 세련된 붓놀림과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는 능력으로 인해 우리의 감성에 어색함 없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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